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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의 세계 - 보고서 모음
 
작성일 : 16-12-09 20:09
(14주) 후한 광무제에 대한 비판
 글쓴이 : 윤교11제봉…
조회 : 663  
후한을 일으킨 광무제는 중국의 손꼽히는 성군 중 한명이다.속된말로 깔거리가 거의 없는 황제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광무제도 호족세력에 대한 견제 실패와 도참사상에 대한 과도한 추종이라는 오점을 남기고 있다.
 
우선 호족 견제 실패에 관련한 내용을 보면, 광무제는 본래 남양 출신의 호족으로 그가 세력을 일으킨 남양지역은 비옥한 토지로 인해 많은 호족들이 성장하고 있었고, 그가 천하를 통일하는 데 도움을 준 이들은 대부분 서한시기에 중앙권력에서 밀려나거나 오래전부터 이 지역에 거주하면서 세력을 키운 대토지 소유 호족들로 등우, 경감, 두무 등의 공신들 역시 이런 남양호족 출신이었다. 즉 후한 정권은 시작부터 어느 정도 호족 연합정권의 색채를 띄고 있었고, 이러한 이유로 광무제는 호족에게 강경한 정책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 즉위한 지 15년이 된 시기에 광무제가 경지와 호적의 조사를 실시했으나 이 과정에서 부정 조사가 일어나 광무제가 관련자들을 처벌하자 하북 지역에서 이에 반발한 호족들의 대규모 봉기가 일어났다. 결국 이 사건은 구양흡과 장급 등의 일부 책임자를 처벌하는 데 그쳤으며 이후 다시는 재조사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후한의 호족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대토지를 바탕으로 소작농을 부리고 사병을 키우는 등 점차 세력을 키워 나갔으며, 후한 말기에는 사실상 이러한 호족들은 중앙 관리를 능가하는 세력을 가지게 되어 환제 대에는 호족들이 우리는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도 된다는 말을 하고 다닐 정도로 그 횡포가 극에 달했다고 한다. 결국 후한 정권의 지방 통제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물론 호족 문제는 당대에는 그리 가볍게 처리할 수 있을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전한 때에만 하더라도 호족 견제책은 여러 대에 걸쳐서 차례대로 행해져 왔으며, 호족의 힘이 강성할 때에는 황제조차도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게다가 전한 때 실시한 향거리선제의 영향으로 지방의 호족들은 인재를 선발하는 인사권마저 틀어쥐고 있었고 이것 역시 전한 후기 호족의 세력이 강해지는데 한몫을 하였다. 애초에 전한을 멸망시키고 광무제와 싸웠던 왕망만 하더라도 지나치게 호족을 견제하다가 역풍을 맞고 각지의 반란으로 사망한 것이 바로 얼마 전이었고, 광무제가 천하를 통일하고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왕망과 반대로 호족에게 우호적인 자세를 취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즉, 광무제의 호족 정책은 역량 문제라기 보다는 시대적 배경과 큰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지 않았기에 충분히 비판해볼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도참사상에 대한 추종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면, 광무제는 앞날의 길흉에 대한 예언을 믿는 도참사상을 강하게 추종했다. 그 정도가 아주 심해서 도참 사상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유배를 가다가 죽이거나 도참 사상을 믿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가 죽음만은 면했던 신하도 있다. 
역으로 도참에 나온 글에 주석을 달음으로써 후대를 받은 신하도 있다. 이만큼 광무제의 도참사상에 대한 신봉은 컸다.그런데 이것이 후한 말기의 혼란한 상황과 맞물려 황건적의 사상을 뒷받침하거나 장로로 대표되는 오두미교 같은 사이비 종교가 세력을 키우는 데 일조를 한 것이다.
 
훌륭한 황제도 황제이기 이전에 사람이기에 그릇된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그렇기에 그들을 비판하면서 역사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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