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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의 세계 - 자료실
 
작성일 : 12-03-07 15:11
2012년 1학기 1-2주 강의참고자료
 글쓴이 : 이윤화
조회 : 3,944  
첨부파일이 올라가지 않아 본문을 그대로 옮깁니다. 수강시 지참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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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학기 동아시아고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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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시간
 
1-1. 역사란 무엇인가?
* 역사= 생각(사상 혹은 사고) →행위 →사건으로 구성됨.
* 역사란 무엇인가 : 과거와 현재, 史家와 事實, 주관과 객관, 우연과 필연, 과학과 예술인 가의 문제를 다룸
* 사마천의 역사란 무엇인가 : “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成一家之言”
* 역사는 신념의 문제로서 “자기발견”을 목표로 한다.
 
** 현대역사학의 일반적 경향과 문제점
1) 역사학의 주제 즉 ‘개인’에 있어서 지나치게 “위인”의 사건에만 집중되어 그들이 기능한 좀 더 광범위한 맥락들을 소홀히 하였다고 했다. 역사학의 조망을 정치에서 사회로 확대함. 이들은 역사학은 일반화가 아니라 특수한 것을 다루며 그 목표는 설명(Explain)이 아니라 이해(understand)라는 주장은 도전을 받았고 대신에 역사학을 포함하여 모든 과학은 인과적 설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
2) 사회과학을 지향한 역사가 정치에 대한 연구사회에 대한 연구로 대체했다면 새로운 역사는 일상 생활과 일상경험의 조건으로 이해된 문화에 대한 연구로 관심을 돌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권력과 착취의 소재지로서 정치와 경제의 중심적 역할을 강조한 마르크스주의적 접근방식은 살아 있는 인간의 실제 관심사와 이해관계를 도외시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제는 역사에서의 많은 개인들이 전통적, 민족적 전체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분리하여 새롭게 인식될 필요가 있다.
3)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점차 많은 역사가들이 역사는 과학보다는 문학과 더욱 긴밀하게 연관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역사의 대상이란 것 자체가 고정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연구에서 객관성이란 가능하지 않다고 공감이 넓혀져 감.
4) 최근 역사학의 주제는 사회 구조와 과정으로부터 일상생활이라는 넓은 의미에서의 문화로 바뀌었다. 개인에게 새로운 관심이 기울어짐에 따라 역사학은 다시 한 번 인간의 얼굴을 취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상층의 유력한 인물이 아니라 평범한 대중이 관심의 초점.
5) 일군의 역사가들은 거시 역사적, 거시 사회적 과정에 대한 연구를 자신들이 미시사(微視史)라고 불렀던 것으로 대체하고자 했다. 여기서 미시사란 구체적인 개인들로 이루어진 소규모 사회적 단위를 연구하는데 전념하는 시도를 의미한다. 이러한 시도는 문화라는 의미의 그물망을 의미추구적 해석과학으로 간주. 문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표면상 수수께끼같은 사회적 표현들을 해석하는 ‘해명(explication)’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신문화사는 고전적 역사주의의 ‘해석학’처럼 설명보다는 텍스트로 역할하는 사회적 표현들의 의미를 재구성하려는 시도인 ‘해명’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하겠다. (이상, 조지 이거스( Georg G. Iggers )/임상우․김기봉 옮김, 󰡔20세기 사학사󰡕, 푸른역사, 1999 참조)
 
 
1-2. 중국의 인문지리적 환경 : 북위(57도-18도), 동서(135도-75도)
① 총면적 약 960만평㎢ 2만㎞의 국경선, 18,000㎞의 해안선
② 강, 호수, 운하 : 양자강(6300㎞, 180만㎢유역) 황하(5464㎞, 75만㎢유역), 흑룡강(2965㎞) ; 鄱陽湖(江西省, 3976㎢), 洞庭湖(湖南省, 3915㎢), 洪澤湖(江蘇省, 3780㎢), 太湖(2200㎢)
* 운하 : 京杭운하 - 1782㎞ (황하-淮河-양자강-錢唐江 등 7단계)
* 五嶽 : 泰山(1542m), 華山(1997m), 衡山(1290m), 恒山(2017m), 嵩山(1440m)
* 불교성지 : 五臺山(山西, 청량산, 문수보살), 普陀山(광동, 관음보살), 九華 山 (안휘, 지장보살), 峨眉山(사천, 보현보살)
③ 민족구성 : 56개 민족 약 13-4억, 漢族, 滿洲族, 蒙古族, 回族, 藏族 , 朝鮮族 외
 
 
1-3. 중국의 전통적 경제와 사회
① 미국의 약 4배나 되는 인구가 미국농지의 半의 경작지에서 식량공급, 돼지, 닭 이외의 가 축 사육 어려움
② 중국의 경제생활은 노동집약적인 것 - 벼농사, 비단제조업, 수로사업, 운송방법
③ 사회적 유산 : 중국사회는 개인이나 국가 혹은 종교보다 가족이 더 중요단위
* 文化大革命시 曲阜의 3/1이 孔氏 - 파괴 면함
* 삼강오륜 : 가족관계의 확대, 친족집단의 중요성 인식,
* 근대 서양은 다원적 사회 : 교회와 국가, 자본과 노동, 정부와 기업 등 다양한 힘이 법 의 지배 하에 균형을 이룸
* 서양인의 중국인식 : 1)독특한 과거-독특한 미래를 상상 : 중국인의 생존능력이 세계를 구원? 2) 그렇게 적은 수의 사람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지배한 힘? 3) 황제권위의 보편화(의례적인 지도력), 엘리트들의 도덕적 원리에 의한 자발적 수양, 관료 기구, 폭력적 처벌의 법의 존재
* 현실적 경험 : 1930-40년대의 일본, 1950년 북한과 중국, 1960-70년대 월남전, 1980년대 의 경제발전, “아시아적 가치”논쟁
 
 
1-4. 중국인의 사유특징
* 具象的 지각의 강조와 개념의 구상적 표현: 문자의 구상성(천리마, 만리장성 등), 추상적인 개념을 추상적으로 쓰지 않음. 즉 矛盾(창과 방패), 원형을 완전한 것으로 인식(圓滿, 圓融), 추상적인 개념을 시각적 표상으로 이해하려 함(태극도설, 역학 등)
* 추상적 사유의 미발달 : 영어의 old (耆(60), 老(70), 耄(80-90), 다수를 하나의 보편 속에 총괄하게 하는 추상적 사유가 미발달, 죽음도 崩․薨․卒․死 등. 보편을 표시하기 위하여는 특별한 방법 즉 대립적인 두 가지 말 多少․長短․緩急․高低 등. 언어에 명사와 형용사에 단수, 복수, 남성, 여성구별이 없음, 법칙적 이해의 결여
* 개별성의 강조 : 개별적인 사례의 중시, 일반적인 명령이나 교훈보다는 개별사례
* 옛 것 숭상의 보수성 : 과거 사실의 강조, 先例를 통한 체험중시, 고전적 사유방법의 중 시-古人의 글: 권위
* 현실주의 경향 : 인간중심 - 인간과 분리된 存在를 인정 안함. 편의적․실용적․종교의 현세중심적 특징
* 개인중심주의와 신분질서강조 : 윤리․性․가부장적 가족관계 중시,
* 자연의 본성을 강조 : 順應․天人相應
( 이상, 中村 元지음/김지견 옮김, 󰡔中國人의 사유방법󰡕(까치출판사, 1990 참고)
 
 
 
 
 
 
2-1. 동아시아 삼국(한․중․일)의 과거와 현재
1) 실상과 허상 : 전통시대 당↔신라, 중국↔나라(奈良)․헤이안(平安)시대의 긴밀, 이후 점차 소원해짐
2) 근세 이전의 상호 소원(疏遠)
* 접촉기회가 아주 적음 : 쇄국정책의 시행
* 생활상의 상이 : 복식, 음식, 종교의례 등 생활상의 차이와 상호 무관심
* 공통어의 결어 : 글과 말이 상이함. 언어 이해자가 극히 제한적
3) 근대이후 그 관계의 변화와 불변
* 상호관심의 희박 : 서로의 현재문화와 생활상에 대한 관심도 지식도 여전히 낮다
* 서구지향성이 강함 : 근본적인 고대문화부흥운동이 동아시아에서 크게 일어난 적 없음 다만 中體西用(中)․東道西器(韓)․和魂洋才(日) 등
* 전통과의 단절 : 언어와 이해의 정도가 모두 단절화 현상(번역에 의존)
4) 세계대전 후의 갈등과 화합 : 갈등과 충돌, 냉전, 화합, 통합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성
* 발전의 공통성 : 문화적 요소(동아시아 요소로서의 한자․유교․불교․교육과 지식의 강조, 질서와 권위의 존중, 조상숭배의 가족가치 중시, 단체우선, 자기억제 등등, 기록 과 책의 중시 등)
* 그러나 여전히 상존하는 疏遠관계
문자의 제약(한자공통화의 어려움), 교통왕래의 제약(비자의 엄격 제한, 서구에는 개방, 새로운 쇄국적 경향), 연도표시에도 차이가 보임, 국가와 민족사이의 평등관이 결여됨 (화이사상의 상존), 내부적인 통일과 통합의 과제( 남북통일, 중국의 소수민족 갈등 등)
* 동아시아 통합의 어려움 : 새로운 黃禍論의 위험성. 따라서 소위 태평양공동체에서 점 차 서서히 동아시아로 확대하는 역시각이 오히려 바람직할 것.
 
 
 
 
 
2-2. 동아시아세계의 역사적 의미와 의의 : 한자․유교․율령제․불교 등 자율적 세계구성
1) 동아시아세계 : 자율적 역사세계,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역사세계와 함께 주체적 역사 세계, 중국문화와의 관계를 기축으로 형성된 자아완성적 문화권 = 일종의 역사세계
* 중국․한국․일본․몽고고원․월남․실크로드(하서회랑 주변) 등 - 문화적 자율성(중 국문화와의 접촉․수용․조화․거부 등)
* 동아시아세계의 요소 : 한자문화․유교․율령제․불교 - 민족의 자각을 가능하게 함. 따라서 한국사의 특수성을 이해하는데도 도움.
* 동아시아세계의 형성과정 : 점진적 발전과정을 거쳐 성립 - 중국의 역량과 받는 측의 사회역량이 일정 수준에 이르렀을 때 가능함.
* 철저한 「정치적」사회 - 은주(殷周)국가 -: 동아시아세계 성립 불가능
 
2) 두 가지 개념의 중요성
* 화이사상 : 종족상의 구분이 아닌 “예(禮)”를 기준. “동아시아 정치체제”의 이론기초
봉건제도 : 중국적 세계의 질서이념 = 춘추시대
* 전국시대 : 화이사상과 봉건제가 이상화 되어버림 - 주변국의 정치적 사회 태동시작
주변국의 경우 중국과의 관계에서 약간의 정치적 자각(미개화→문명의 단계)출현
* 秦의 통일 : 황제출현 - 군현제실시 : 단 주변국가와의 관계가 아직 설정되지 않음 * 漢代 : 군국제 실시 - 동아시아세계의 형성가능성 : 황제↔왕, 侯의 작위적 관계(정치 적 관계의 성립), 대외통치의 이념기반인 유교의 관학화
--그러나 여전히 한의 황제↔四夷의 首長이 항구적 정치관계가 아닌 대결, 정복구도
이 같은 상황에서는 동아시아 세계의 설정의 의미가 약화됨, 다만 덕치주의 유교관, 황 제제도, 화이사상, 봉건사상 등이 한의 대외관계의 이상적 방식이 됨, 또 한왕조의 대 외통치 강화는 반발조성 - 내부적 정치, 사회발전의 동력이 되기도
 
 
2-3. 동아시아세계의 형성 및 발전
* 삼국의 정립 - 대외관계의 정치화 - 직접 통치방식의 정책 - 조공, 책봉관계 “外臣”
* 남북조시대 : 북조↔고구려, 남조↔신라, 백제 등 다원화경향도
* 이후 주변국이 고립적, 독립적으로 정치발전을 꾀하기가 어렵게 됨
* 수당시대: 책봉체제의 일원화가 시도 - 정치적 문화적 일체화시도
* 송대에 오면 변화 : 동아시아세계의 齊一性이 정치, 문화상 그 기능을 잃게 됨. 즉 정치 중심의 기능을 상실하고 경제, 문화중심 기능(교역의 증가, 사상적 보급심화, 서민생활, 생활문화의 영향이 증대)
** 동아시아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의 네트워크 붕괴 - 19세기 중엽이후 유럽자본주의 전파이후 - 천여년 이상의 자율적, 완결적 의미의 역사세계가 붕괴함
 
 
 
2-4. 동아시아 담론 : 아시아적 가치론
1) 중국, 한국, 일본의 세 나라가 정치 및 경제적으로 공동체 혹은 지역적 실체를 만들어야 하는 역사적 필연성과 당위성을 주장하는 사회과학적 언술들
2) 인문학적 논의로서 문학, 철학, 예술, 그리고 역사해석에 동원되는 서구의 지식과 논리의 틀 및 언어와 이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서구 담론에 의하여 상실되었던 동양의 것을 다시 찾으려는 운동
3) 문화논의라고 이름지을 수 있겠는데 정치 경제적 공동체의 가능성이 문화의 동질성에 바탕을 두고 있고, 서구 담론에 대항하는 인문학적 언술들 역시 동아시아 특유의 문화를 전제로 하는 만큼 동아시아의 문화적 실체와 본질의 규명에 관한 담론이다.
* 동아시아 정체성 추구(자기문화 찾기), 서구중심의 근대화, 세계체제에 대한 반성
* 동아시아 가치의 우수성 찾기: 불교와 도가사상을 포함하는 신유학 전통, 한자, 자연과의 일체화, 세계에 대한 유기체론적 시각, 개인주의에 우선되는 공동체 윤리, 선형적 사고방식 대신 나선형 혹은 순환적 사고방식, 모순과 상극의 짝으로부터 相生을 실천하는 윤리 등
* 그러나 동아시아와 서구 담론의 이분법은 문화의 내적 다양성과 그 자체의 융통성과 가변성을 무시하여 문화를 화석화할 수도. 또 동양 문화에 대한 긍정 일변도의 해석이 지니는 문제점. 이를테면 가족주의와 혈연주의, 공동체 윤리, 모순적인 것의 조화로움, 관용성, 인간주의, 자연과 인간의 유기체적 일원론 등이 동아시아 특유의 것인 양 강조함으로서 그것이 서구와 나아가 지구상의 다른 지역과 민족집단에서도 실천되고 있는 인간문화의 보편적인 원리임을 망각하기도.
* 동아시아 내부의 문화적 이질성 간과. 삼국의 국가주의적 경향, 문화결정론의 경향(유교적 가치를 가장 중시.
* 수평적 사고를 환기시키기 위해선 ‘문명으로서의 아시아’나 ‘지역연대로서의 아시아’ 이외에 ‘지적 실험으로서의 동아시아’란 발상이 필요하다.
 
 
3. 중국의 고인류와 구석기문화 : 신화, 전설체계와의 관련성에 유의. 19세기말 과학-고고학 성과(도로․철도․수로 등 기반시설의 확대와 그 공사로 인함)
* 구석기인류(시각자료), 구석기중요유적지(역사도설p.103) 참고)
 
1) 서후도(西侯度: 山西) 유적, 남전(藍田: 陝西)인, 원모(元謀: 雲南)인 등 180만년- 170만년 전까지 소급
2) 北京猿人 : 1920년대 고고학적 발굴기록이 정리됨. 비슷한 시기 구석기인류와 비교됨
신장(남자: 1.558m, 여성: 1.435m ), 뇌용량-1059㏄ , 15년 미만의 생존이 3/1
食人의 습관(?)
3) 중기구석기(20-10만년전) : 대여(大荔)인․마패(馬壩)인․장양(長陽)인․정촌(丁村)인 등
석기 외에 골기와 목기사용. 잡혼에서 혈연에 의한 혼인, 씨족제사회의 계기
4) 후기구석기(약 4-5만년전) : 유강(柳江)인․자양인(資陽)인․기린산(麒麟山)인․오로도스 인․산정동인(山頂洞人) 등 : 정교한 도구 사용, 석기의 가공능력 향상, 죽은 자에 대한 종교행위 흔적, 수로와 어렵생활. 점차 족외혼이 나타남. 극히 초보적 농경 흔적
 
 
 
 
** 시대구분(구석기→청동기까지)
①구석기 : 180만년전-50만년전(초기)→40만년-5만년전(중기)→5만년-12000년전(후기)
②신석기 : 12,000년→기원전 2,000년전
B.C8,000-5,000 농경시작, B.C 5,000-3,000 앙소문화, B.C 3,000-2,200 용산흑도문화
③청동기시대 : 기원전 2,200-500년전
하(夏: B.C 2200-1750), 상(商: B.C 1750-1040년), 주(周: B.C 1100-256) *추정연도
 
 
 
 
 
* 사회발전의 단계구분 형식
① 원시부락(하․상)-봉건사회(주)-상업자본주의(진한-청;과도기)-자본주의(아편전쟁이후)
② 원시공산주의(삼대)-아세아생산방식(하․상)-봉건제(주)-전자본주의(진-청)-후자본주의
③ 씨족사회(상이전)-노예사회(주-서진)-봉건사회(동진-청말)-자본주의(1900-)
④ 원시사회(전설)-씨족사회(상)-봉건사회(서주)-전제주의(동주-청)-반식민자본주의(아편-)
 
 
4-1 중국 신석기 문화의 다양성과 독자성
 
1) 초기 신석기문명 이해;①중국문화의 서방기원설(극복함), ②일원론적 이해(漢族, 黃河중심)
 
2) 黃土와 黃河문명 : 黃土-화북일대 132만4천㎢, 황토퇴적 : 100m-20․30m), 농경기술, 농 업 환경 등이 독특함.
 
* 신석기시대와 구석기시대의 차이 : 타제→마제, 도기 제작, 수렵채집→재배, 생산농경 등의 특징(곡물재배와 가축 사육 : 자연에 행위를 가함. 1차적 식량혁명, 생산기술혁명에 해당하는 변화. 시비술이 확인되고, 술을 빚은 증거→良渚문화에서
잉여생산→수공업의 발달을 촉진했을 것.
 
* 곡물재배와 가축 사육 : 오리엔트 지역에서는 B.C.7000년 경 확인.
중국의 경우-B.C.7000-5000년 경까지 소급: 조기 신석기문화 유적-甘肅, 山東, 渭水 유역 외에도 長江 중, 하류 및 廣東, 廣西, 江西 지역에서도 발견.
 
* 중원지역 신석기문화 중 가장 앞선 것으로 알려진 仰韶文化보다 선행하는 유적- 河北 武安의 磁山村이나, 河南 新鄭의 裴李崗 : 수렵, 어로용 마제석기 다수 출토, 돼지, 양 등 사육, 조를 재배했음이 분명. B.C.6000년경-B.C.5400년경으로 추정. 甘肅 秦安의 大地灣 제1기문화도 비슷함.
→ 중국의 신석기 문화는 늦어도 기원전 6000-5000년 사이에 전지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나타남.
* 과거 중국 신석기문화의 이해 도식 : 중원지역의 역사적 선진성 강조 위해 B.C.5000년경 시작된 앙소문화 중심의 발전계통을 주장. 仰韶文化와 龍山文化가 독립, 병존→용산이 앙소문화에 비해 훨씬 후대가 밝혀지자, 앙소→용산식→용산문화라는 계식적 도식적 발전계통을 설정. 廟底溝제2기문화, 大汶口문화, 장강 하류 강소성 지역의 靑蓮江文化, 장강 중류 호북지역의 屈家嶺문화 등 채도를 포함한 여러 문화들은 소위 ‘용산식’에 포함하여 이해하기도.
 
* 夷夏東西說의 근거 : 앙소의 채도문화는 夏族→하왕조, 용산의 흑도문화는 夷族→상왕조
→ 하왕조에 이어 상이 등장했다는 주장을 뒤집고, 하와 상이 동시에 동과 성에 병존했다는 결론으로 발전. 상의 시조 契(설)의 난생설화=동이의 특징적 전승이라 판단.
 
 
그러나 산동반도를 중심으로 앙소문화와 용산문화가 구별되며, B.C.4500년까지 소급되는 大汶口문화가 확인되면서 화북지방 신석기문화의 2원적 이해 가능 : 앙소문화→하남용산문화→산동용산문화도 가능. 그러나 이후 장강 하류의 B.C.5000년까지 소급이 가능한 절강성 여요현의 河姆渡문화 및 마가병문화 등과 華中, 西北方이, 北方, 동북방 등지에서도 유사한 시기의 신석기문화 유적이 발굴-중원중심의 신석기문화 기원론은 수정이 불가피.
→ 중국의 신석기문화는 기원과 계통이 다른 여러 문화가 각 지역의 구석기 晩期문화 내지
선행문화를 모태로 독자적으로 발전했음이 확실해짐.
 
* 화북의 신석기문화(1) 앙소문화: 1920년대 스웨덴의 지질학자 앤더슨(J. G. Anderson) - 1921년 하남성 민지현 앙소촌 부근에서 채도와 논구용 마제석기, 기타 일상용품 발견. 조, 수수, 배추 경작. 서아시아의 채도와 유사하다고 하여 채도의 서방기원설이 주장됨. 구석기문화유적이 발굴되지 않음에 따라 수입설이 퍼지게 된 것→ 이후 자생발전설이 유력.
: 대표적인 유적이 섬서성 서안의 반파촌의 반파유형, 하남성 중남부 陝縣의 묘저구유적의 유형, 하남성 安陽시 後崗유형, 하남성 안양시 大司空村유형
* 半坡村유적지: 채색토기(음식용기, 물그릇, 취사기구, 저장용기 등 다양), 각종 문양, 물고기 모양이 압도적으로 많다. 실물 모형, 기하학적 도안화, 사람얼굴을 한 물고기모양(人面魚紋)의 도기 발견-제사용 喪紋? 남녀 생식기 상징? 강채유적에서도 확인됨.
→앙소문화단계(B.C.5000-3000경): 도기제작, 농경생활, 가축사육, 정착생활 등 생산경제단게에 진입. 수형식 거주지, 주거의 내부에 좁쌀 저장. 돼지가 사육됨이 확인.
 
* 大汶口文化 : 화북의 신석기문화(2)- 1974년 이후 산동성 중심, 강소, 안휘 북부에 걸쳐 앙소문화와 비슷한 시기의 독자적인 문화형성하면서 용산문화의 전단계를 이룬 대문구문화가 확인됨. B.C.4500-B.C.2300년 경. 화북지역의 경우: 서-앙소문화, 동-대문구문화가 병존
: 골제, 상아로 만든 낫, 칼 등. 돌도끼, 돌삽 등 농구 및 생산도구. 정교한 도기나 상아제품 출토, 생산력에서 앙소보다 앞서고, 잉여재부의 발생, 소소에게 집중 흔적이 발견됨.
* 용산문화도 앙소문화를 이은 하남 용산문화와 대문구문화에서 발전한 산동 용산문화가 지역적으로 독자적인 발전이 이루어짐.
 
 
용산문화: 화북의 신석기문화(3)
* 용산문화: 1930년-1931년 중앙연구원 역사어언연구소 산동성 歷城縣 龍山鎭의 城子涯에서 발견. 흑도의 발견. 앙소문화 유적보다 섬세하게 제조된 농구용 마제석기, 골각기, 貝器 등 발견. 卜占에 사용한 동물의 肩甲骨- 상대의 갑골문과 결부하기도.
 
후강유적 발견: 1931년 하남성 안양시 근처의 後崗에서 신석기문화층 발견: 최하층에 채도, 중간에 흑도층, 상층에 商文化. 항소→용산문화의 시대적 선후가 밝혀짐.
 
용산문화의 흑도가 용산문화 중 산동성을 중심으로 분포한 전형적 유형(山東유형)에만 발견, 하남성 후강 제2기유형, 섬서성 客省莊 제2기유형 등에는 보이지 않음. 용산문화 전체가 흑도로 상징되는 것은 아님.
 
* 앙소문화는 陝西방면에서 먼저 河南에 전해지고, 이어 용산문화가 山東으로부터 하남에 도달하여 商文化가 형성된 것으로 이해. 그러나 다시
앙소문화에서 발전한 하남 용산문화가 →商文化로, 산동의 용산문화는 대문구문화에서 발전. 용산문화에도 섬서유형, 하남유형, 산동유형이 존재함.
 
* 용산문화는 대체로 B.C.2300-1800년경까지 존속한 것으로 추정. 지역적으로 산동지방 중심, 요동지방, 강소북부까지, 하남성 묘저구에서 발견되어 연대상 商代까지 연결. 그 대표적인 유적지는 묘저구 제2기문화, 후강제2기문화, 객성장제2기문화, 전형적 용산문화 등 4개.
 
강남의 신석기문화
淮水 및 長江 유역: 앙소, 용산문화와 별행 혹 별도의 신석기문화.
강소, 안휘 지역의 靑蓮江문화, 절강성 여요현의 河姆渡문화, 절강성 嘉興현의 馬家병문화 - B.C5000년까지 소급. 그 외 절강성 북부, 상소남부의 良渚문화, 장강 漢水 지구의 屈家嶺문화, 장강 하류의 湖熟文化 등이 독특한 발전. 문화적인 요소가 복잡하여 그 계통을 분류하기가 쉽지 않음.
청련강문화 : 앙소문화→용산문화로 이행되는 시기에 융성. 벼의 흔적을 발견함. 水稻作의 시작. 벼의 흔적은 절강 항주시 良渚유적, 한수 유역 호북성 굴가령(불에 탄 메벼) 남부에서 북으로 전해짐.
하모도, 마가병문화에서 발전한 양저문화는 청련강보다 약간 늦고, 용산문화와 병행추측.
하모도유적에서는 대량의 도기와 함께 벼가 출토. 다양한 골제, 석제, 목제의 농기구발견. 주거형태는 화북의 반지하식 수혈식이 아닌 목조가옥. 반파의 앙소보다 더 오래되었을 가능성
 
 
4-2 중국신석기문화의 특징
 
1) 경제활동 : 마제석기․도기의 출현, 농경과 가축의 사육을 통한 식량의 재배와 생산, 생산공구로서의 농구발달(석․골․목제 등), 돌도끼(경지조성, 벌목 등 수요), 돌낫(石鎌: 수확용), 석반(石盤: 곡물가공용) 등은 기능상 완벽한 형태.
그러나 농경방식은 火耕農法의 수준, 가축의 농업이용은 아직 시기상조. 1명의 농부가 4-5인의 부양가능 생산력도. 화북의 조, 수수, 화남의 벼. 가축(말을 제외하고, 개, 돼지, 소, 양 등 사육) 어망 이용의 고기잡이.
 
잉여생산의 증가는 비농업인구의 출현→수공업발달의 촉진 : 저장용․취사용․제사용의 각종 형태의 도기 등장, 도기 제조방법도 손에서→ 회전반 사용으로 발전. 계란 껍질만큼 얇고 광택의 흑도는 신석기도기의 최고봉. 商周시대 靑銅器物과 기본적으로 형태가 동일함.
 
신석기말기의 대문구문화의 야동(冶銅)흔적, 앙소문화의 강채유적에서는 아연25%, 황동편(銅65%)이 발견, 신석기시대 말기에 이미 청동주조술이 보급됨을 확인됨. 청동기 역시 자생설이 유력해지게 되는 계기.
 
마직과 견직의 생산흔적, 옥기와 상아제품 등 각종 정교한 옥기와 상아제품 등 공예품의 대량 생산.
 
앙소, 대문구문화의 주인공은 인종상 모두 몽고인종에 속하며, 현대의 화북, 중앙아시아 계통보다는 남중국인 계통과 유사한 것으로 확인됨.
 
2) 취락구조 : 생산활동- 정주취락 형성의 증거. 농경에 적합한 비옥한 토지, 하천 및 그 지류에 가까운 구릉 또는 臺地, 교통이 편리한 곳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지역에 위치.
* 반파촌 유적: 1952년 발견, 1954-57 5차에 걸친 대규모 발굴. 渭水의 지류 동쪽 기슭에서 800미터 떨어진 河床 9미터 황토 고원지대에 위치. 총 면적 약 5만평방미터. 동서가 좁은 불규칙한 원형취락을 이룸.
기원전 4700년대 : 황토고원지대, 총면적 5만㎢, 남북이 길고 동서가 좁음. 장방형 가옥(평균 20㎡: 반지하식(竪穴式, 약 200개이상, 500-600명이 동시 거주 추측), 공통집회소 추정의 방형건축(남북 10.8미터, 동서 10.5미터의 약 160평방미터), 저장용 곳간, 가축사육용 우리, 도요지, 묘지 등, 거주지 주위 5-6미터의 도랑(濠溝-방어용)
발굴된 묘지 : 170구 정도의 성인묘 확인, 남녀분리 매장, 남자 합장묘, 네 여자 합장묘 발견, 성인과 아이들의 묘제에 구분. 옹관에 매장된 아이들.
* 섬서성 임동현 강채촌(姜寨村)유적 : 반파촌에서 약 20㎞ 떨어진 짐. 앙소문화의 반파형에 속함. 취락의 전체구조가 밝혀짐. 기원전 4500년대, 규모가 적음(25,000㎢ 정도)
 
3) 촌락조직 :
나이나 性別에 따라 별개의 집단이 만들어진 것은 당시 촌락 내부에 개개의 가족구성보다 우월한 조직 존재했으며, 이것이 죽은 후에도 촌락구성원을 규제했음을 시사함, 동등한 신분구성(장로의 존재), 씨족조직기반, 빈부의 차이가 조금씩 나타남(계급분화의 조짐). 그러나 유아의 경우는 아직은 촌락성원으로서의 규제보다는 가족원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경우에 보이는 빈부의 차이가 강함. 성인은 그 반대. 가족원<촌락구성원.
 
* 촌락의 조직은 대개 씨족조직을 기반으로 했다고 추정됨. 반파촌은 씨족마을로 추정. 반파의 경우 한 가족이 3-5명 구성, 촌락의 구성원은 대략 80명 정도.
 
보다 큰 규모의 촌락의 경우 몇 개의 씨족으로 구성. 강채의 유적은 5개의 대형방옥 중심 형성, 1000여개의 중, 소형 방옥이 발견, 대형방옥을 중심으로 형성. 촌락의 중앙을 향해 문을 냄. 집회나 의식의 장소인 광장.
외혼제의 쌍방조직을 구성. 촌락의 정치는 각 씨족의 長老에 의해 운영됨. 특권적 지배자는 아님. 이후 장로의 지위가 점차 높아지는 경향. 촌락의 공동의 의식으로 매장된 2차매장의 흔적이 발견됨. 섬서성 華縣 柳子鎭 元君廟에서 발견된 60세 가량의 남자묘 특징. 장로? 주술사? 가족간의 빈부의 차이가 인정→계급분화가 이루어질 요소는 이미 씨족내부에 내재됨
 
* B.C3000년경에 모계씨족사회→부계사회로 전환, 對偶婚→一夫一妻制로 발전, 부계가족 중심의 사유제발전과 계급분화라는 도식이 등장.
 
 
4) 계급분화 : 청련강문화 유적에서 빈부의 차이가 발생. 남녀의 부장품 차이(남여의 분업의 차이, 남자 중심의 사회구성확인- 실용도구가 아닌 玉器: 권력과 지위상징), 가족 전체의 합장(질병 등 사유)일 경우 남편의 위치가 오른쪽으로 중심선에 놓임: 남녀에 의한 분업, 가정의 독립, 가족간의 빈부차이의 확대, 남자의 우위 등이 확인됨. 생산과 유리된 존재의 확인.
이후 점차 물의 통제권과 관련한 권력발생, 경제적 우위 차지. 씨족제도 및 결혼제도의 변화, 사회적 분업의 발생, 사유제의 성립과 발전, 계급과 신분의 분화 등 전반적인 사회구조의 변화와 병행하여 이루어짐.
* 祭儀의 등장과 발전: 사회적 분화와 갈등을 일시적으로 또 관념적으로 해소시킬 수 있고, 동시에 그 권력을 보증, 강화해 줄 수 있는 방법. 대규모 조직된 제례의 등장. 일정한 무덤에서 다량의 제례용 禮器가 출토.
제례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상징체계를 발달시킴. 고대 중국의 제례, 예술은 정치권력과 불가분의 관계. 각종 신화적인 동물의 형상,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도안, 기이한 형태의 도기, 옥제, 석제의 각종 장신구 및 禮器 등은 제례의 발달과 표리를 이루고 발달. 제례→점복, 음악, 신탁의 상징 등이 출현. 상징부호, 음악, 점복의 밀접한 상호관계.
 
* 도기의 대량발견- 도기제작의 專業化? 베(앙소문화) 이외의 양잠(良渚문화)이 확인됨. 이후 점차 농업생산 발전의 기반 위에 사회내부의 계층화, 인구증가 → 문명의 탄생 준비
 
 
중국의 신석기문화권 구분
1. 蘇秉琦(소병기) 등: ① 陝西豫晉隣境區 ② 山東 및 그 인접지구 ③ 湖北 및 그 인접 지구 ④ 양자강 하류지구 ⑤ 江西성 鄱陽湖, 珠江 삼각주 중심의 남방지구 ⑥ 長城 지대 중심의 북방지구 →그 아래 다시 세분지역으로 구분.
2. 佟住臣 등: ① 馬家窯문화중심 ② 半坡문화계통중심 ③ 廟底溝문화계통중심 ④ 大汶口문화계통중심 ⑤ 河姆渡문화계통중심 ⑥ 馬家병문화계통중심 ⑦ 屈家嶺문화계통중심
3. 嚴文明: ① 旱地농업문화 ② 稻作농업문화 ③ 수렵채집문화로 구분하고, 감숙문화구, 燕北문화구, 中原문화구, 山東문화구, 長江문화구, 江浙문화구 등으로 구분. 양자강 이남과 遼西지방이 공백이 됨.
 
* 공통요인이 점차 증가, 실제 商文化 형성에는 앙소문화에서 발전한 하남 용산문화, 大汶口문화에서 발전한 산동 용산문화 + 내몽고, 대, 소릉하 유역 중심의 紅山문화, 하모도, 마가병문호에서 발전한 良渚문화 등이 크게 기여함.
 
 
** 중국의 기본적인 8개 문화권
① 동북문화 : 수렵, 원시적 농경, 돼지사육이 특징(북경․산동․만주일대)
② 山西와 內蒙古 : 소에 의존, 유목민, 원몽골인
③ 섬서와 감숙일대 : 말에 의존, 투르크계 인종의 조상
④ 四川과 그 以西지역 : 양․산양, 티벳인의 조상
⑤-⑧ 남방계 : 농경문화, 越 등
(* Wolfram Eberhard/최효선 옮김, 󰡔중국의 역사󰡕(문예출판사,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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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화 교수 l E-mail : yhlee@and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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