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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허시론
 
작성일 : 12-12-01 16:59
타락한 자의 자아비판(펌글)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2,172  
한국태생의 한국인보다 한국사회를 더 예리한 눈으로 바라보는 박노자 교수의 글입니다. 자아비판의 심정으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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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자의 자아비판?
만감: 일기장 2012/11/29 20:33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53725
저는 지금 이 글을, 다소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적습니다. 그런데 컨디션이 안좋고 머리가 전혀 잘 돌아가지 않는 만큼,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온 고백적 이야기를 그냥 직설적으로 쓰고 싶습니다. 아무리 부끄러워도 말씀입니다. 뭐, 지금의 제 상태에서는 부끄러움도 의식하기가 힘들 정도로, 두통이 조금 심합니다.
 
보통 남한에서는 "학자" 내지 "교수"를 조금 "깨끗한", 다소 덜 물든" 존재로 많이들 상상합니다. 노르웨이에서는 인제 들어보기도 힘들 "상아탑" 같은 옛 말들도 남한에서는 아직 유통중인가 봅니다. 노르웨이에서 보통 상상되어지는 "교수"는 그냥 일종의 숙련공이고, 지금의 로서아 같으면 사업도 못하고 민영 기업체에도 끼어들어가지 못한 "실패자"이고 북조선 같으면 과학계 "간부"인데, 남한의 교수觀은 사실 다소 독보적입니다. 신문지상에서 하루가 멀다하여 대학 교내 성추행 사건부터 상습화된 대필, 표절, 중복게재, 교수직 매매 등등을 시끄럽게 이야기를 해도, 아직까지는 "교수님"은 최후의 코리안 드림으로 남아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정치와 무관해온 "안철수 교수님"에 대한 지난 번 대중적 열망의 정도를 한 번 보시죠. 물론 그의 타이틀은 매우 다양하고 ("사장님" 등등도 포함되고) 또 "교수님"만을 내밀고서 정치에 개입한 것도 아니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이 "교수님"이라는 말은 거의 "하나님"에 버금가는 위력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부처님을 팔어먹으면서 사는 자들이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더 더러워서 그런가요? 그런데, 우리의 독보적이기로 유명한 (?) 연못에서는 과연 "고학력 직업 집단" 중에서는 누가 더 더러운지 판별하기조차 좀 어려울 듯합니다....
 
교회도 사찰도 다 사고 팔고, 국회의원 자리도 "얼마까지는 낙선, 얼마부터는 당선"이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되어지는 사회에서 그런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도 무의미할지도 모르지만, 제가 본 남한의 "교수"/학자 생활도 아주 철저하게 "돈"에 옭매여 있습니다. 물론 "재력" (경제자본)과 "학력" (문화자본의 일종)의 관계에 대해서는 피에르 부르디외 선생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쉽게 알듯이 이 둘이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것이지만, 남한은 그래도 너무나 "독보성"이 돋보입니다. 예컨대 학문차세대 육성 과정이 많은 면에서 돈 (학비 등)에 좌우된다는 것, 정규직이 되기 전까지 누군가의 재정적 뒷받침없이 살아가기가 매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 등은 구미권이나 일본에서도 들어볼 수 있는 이야기지만, 정규직/비정규직 할 것도 없이 남한 학자의 일상은 놀라울 정도로 "돈"에 집중됩니다. 크게 봐서는 (특히 영향력이 높은) 정규직이 대개의 경우에는 학계를 관통하는 돈 흐름의 "수혜자"로 등장하고, 특히 비정규직들은 (상대적으로 가난하게 살면서도) 그 돈 흐름에 계속해서 "조공"을 좀 바쳐야 합니다. 물론 이 두 측면은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죠. 한 쪽에서 빼앗기지 않는 이상, 다른 쪽에 보태지지 않으니까요.
 
남한에서의 "학회" 현장을 한 사례로 보시죠. 학회를 실무적으로 준비하는 대학원생들이나 비정규직 학술노동자들은 보통 이 추가적 노동에 대한 보상을 받지 않거나 극히 소략하게 받습니다. 한데 학회에 참가하는 박사 이상 연구자들 같으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는 발표료/토론비 등의 형태로 돈을 받습니다. 물론 그 참가자 중에서는 박사학위를 이미 소지하는 비정규직들도 있죠. 한데, 학회를 가능케 하는 돈 흐름을 관리하고 "누구에게 얼마 주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물론 (영향력이 높은 보직) 정규직입니다. 일본 이외에는, 발표한다고 해서 돈을 주는 학회를, 여러분들이 어디에서라도 본 적은 있습니까? 저는 지난 20년 동안 로서아를 위시한 구주, 미주 등지의 수백 개의 학회를 구경해봤지만, "돈 주는 학회"를 주로 남한에서만 (극소수의 경우에는 일본에서도) 경험했습니다. 도대체 "우리식 학회"가 왜 이렇게 "독보적"이어야 하나요? 학회는 그렇다 치고 (멀리에서 왔다고 과거 같은 선물 대신 근대적으로 돈을 주는 조선의 풍습이라는 반론이 들어올 것 같아, 이렇게 씁니다) 학회지는 어떻습니까? 논문을 기고하자면 (회비를 꼬박꼬박 내는) "회원"이어야 하고, 기고를 하기 위해 "심사비"를 주어야 하고, 그 심사를 맡은 동료는 또 거기에 따르는 "심사료"를 받고, 그리고 게재가 확정되면 "게재료"를 학술지에 내야 하는 풍경은, 세계에서 여기 말고 또 어디에서 구경할 수 있나요? 저는 영국, 미국, 독일, 불란서국, 로서아, 일본 등지의 학회지에 글을 내본 적은 있지만, 그와 관련해서 그 어떤 "돈 거래"도 해본 적은 없습니다. 학회지들이 영세해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돈을 거둔다는 반론도 예상되지만, 영세하기로는 로서아는 훨씬 더 영세해도, 거기에서 찬조금 형태로 동료들 사이에 돈을 거두어도 학자들에게 이렇게 "게재稅"를 거두지 않죠. 등재지 논문없이 그 어떤 임용도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이런 식으로 돈을 거두는 것은 사실 일종의 "불법 사설 세금 징수"에 가깝습니다.
 
남한에서는 극락왕생도 돈이고 천당행도 돈이고 정치도 돈이지만, 위에서 쓴 것처럼 결국 학계도 "돈"이라는 이름의 하나의 大河를 방불케 합니다. 우리 생각은 각종 "진보적" 담론으로 가득 차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의 삶의 방식은 극도로 자본주의적입니다. 약자 (학회 실무를 보는 대학원생, 논문 내지 않고서는 임용이 불가능한 비정규직들)를 약탈하면서 (주로 국가와 자본이 주는) 돈을 나누어먹는 것이죠. 저는 "우리"라고 굳이 쓰는 이유는, 저도 남한 학계와 호상 작용하면서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발표료"를 주는 대로 꼬박 받아왔고, 학회 뒷좌석에 앉아서 열심히 들어주면서 모든 실무 준비를 맡는 대학원생의 근무 여건 등을 묻지도 않고 그냥 눈을 감아왔습니다. 이것이 남한의 관습이니 어차피 거기에서 살지도 않는 몸으로 왜 개입하려 하냐 라고 자신을 속으로 변명하고 속이면서 말입니다. 제가 우리 쏘비에트 사회주의 조국의 학술일꾼이 되겠다고 맘 먹고 력사학자 꿈을 꾸기 시작한 나이, 약 13-14살의 나이에 오늘날 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면 과연 미래의 저 자신을 어떻게 판결했을까요? 아, 그런 생각을 하거드면 삶을 그다지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아이가 있고 후속세대도 있기에 삶을 계속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남한에서 거주하시는 동료 여러분께 정중하게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바르게 살고 있나요? 학문을 돈이 아닌 사랑으로 해야 하는데, 우리 관습들으 정말 우리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나요?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학계에서는 민중들의 삶을 약간이라도 낫게 하는 그 뭔가가 과연 생장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약자들을 약탈하는 광경을 못본 척 하고 눈 감는 게 과연 양심에 걸리지 않나요? 이미 착근되어 일상이 된 폐풍을 어찌 하루아침에 정풍 (整風)하겠습니까만, 그래도 이런 폐습을 논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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