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추가
강의실 중국사학사 왕부지 자료실
이윤화교수의 중국사학사 공부방
l 로그인 l 회원가입 l 현재접속자 l 최근게시물
위진남북조사 공부방 커뮤니티
  최근 7일동안의 인기검색어 입니다. 최종  비판  ??  사료  비교  사기  최종보고서  우연  삼국지  사관  
ID 
PW 
자동로그인
회원가입  ID/PW 찾기
커뮤니티
  만허시론
  가사가화
  대학이 변해야 산다
  공지사항
  자유토론방
  교수님과의 대화
  사진방
    중국여행/북경
    태산에 올라
    공자의 고향
    산동성 제남
    상해/소주
    남경/양주
    장강을 따라
    古鎭(고진)을 찾아
    귀주여행
    황산/화산미굴
    티벳여행
    돈황/투르판
    우리 이웃
    우리 땅 풍경
HOME < 커뮤니티 < 만허시론
만허시론
 
작성일 : 05-07-09 15:57
(펌글)정치적 비판의 정치적 부적절성에 대하여
 글쓴이 : 이윤화
조회 : 3,061  
정치적 비판의 정치적 부적절성에 대하여
(On Politically Incorrect Political Criticism)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먹물의가면 (컬럼니스트) &nbsp;
 &nbsp;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그의 ‘군주론 The Prince’ 한 구석에서 국가 권력을 만들어 내기가 그 후 그것을 유지하기보다 힘든 일임을 대략 다음과 설명한다.

“… (세우기가 유지하는 것보다 어려운 부분적 이유는) 안정된 정부를 확보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새로운 규칙(Rules)과 방법론(Methods)의 도입 필요성에 기인한다.

새로운 질서 도입에 앞장 서는 일보다 더 제어하기 힘들고, 실천에 따르는 위험이 더 크거나 또는 성공 가능성이 더 불투명한 일이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렇다.

개혁을 선도하는 자에 대해, 기존의 질서 속에서 잘 나가던 자들은 모두 적대적 위치에 서는 반면, 새로운 질서의 덕을 볼 가능성이 있는 자들은 고작 미온적 옹호자의 역할을 할 뿐이다.

(옹호자들의) 이런 냉담함은 현재의 법 체계를 지배하는 반대자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고,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것에 쉽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 의구심 때문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적대적 세력들은 (개혁적 선도자를) 공격할 기회가 생기기만 하면 (강력하고 조직적인) 당파적 공격을 감행하는데 반해, (옹호자 및 중도적 입장에 선) 다른 세력들은 미지근한 대응이 고작이라 그 와중에 그들 스스로와 개혁적 선도자가 함께 위기에 봉착한다 …”

마키아벨리 시대 우후죽순 같았던 공국(公國, principality) 군주의 정략적 전술 교과서 일부를 새삼 거론하는 것은, 시대적 차이나 비유의 대칭성을 떠나 생각해 보면,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개혁적 창업자의 어려움과 지금 대통령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감당하고 극복해야 할 난관들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대통령으로 뽑아 주었고 탄핵에서 구해 냈으며 지지세력을 국회 제1당으로 만들어 주었으면 되었지, 뭘 더 바라고 무슨 힘이 더 필요하냐고. 입 있는 자들은 모두 비난하는 것 같다.

작금(昨今)의 정치 경제 안보 및 여러 사회적 혼란과 갈등이 모두 대통령과 집권 세력의 무능과 문제점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노대통령을 신뢰하고 개혁을 지지하는 한 시민의 입장에서 이와 같은 비판 또는 비난에 다소라도 이유나 근거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실로 가슴 아픈 일이다.

오늘의 국내외 상황을 최소한 정치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할 책무가 현 정권에 있는 것은 자명하며, 그러한 것이 이상적으로 실천되고 있지 않다면, 그 1차적 귀책 대상 또한 자명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치 시대적 유행처럼 넘쳐 흐르는, 특히 대통령에 대한 비판 또는 비난의 홍수가 과연 타당한 것인지, 논리적 균형은 갖춘 것인지, 그리고 최소한의 진실성은 담긴 것인지 그 많은 비판자들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대통령이 그의 정치철학으로 설명했고 지금도 고수하고 있는 공동체의 가치 지향점에 대한 생각과 의지가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안 없고 무책임한 비판의 범람

얼마 전, 대통령이 야당 대표들을 초대하여 시국과 정치현안에 대한 대화를 제의하자 제1야당 대표인 박근혜양은 너무 바빠서인지 아니면 그 동안 무시 당한(?)것에 대한 보복인지, 다소 무례함을 무릅쓰고 거절했던 것 같다.

작년 총선 패배 직후(나나 그들이나 지난 총선이 한나라당의 패배라고 보지는 않는 것 같았지만), 상생의 정치를 선제 주장한 야당 대표로는 좀처럼 노출하기 힘든 정치적 협량(狹量)이고 금도(襟度)가 아닐까 생각한다.

야당 대변인은 국민이 모처럼 제대로(최소한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 요소가 가장 적었다는 측면에서) 선출한 대통령에게 무슨 전생의 악연이 그리 깊은지,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든 또는 안 하든, 참으로 몰상식하고 표독한 언사를 마치 무슨 기발한 촌철살인인양 부끄럼도 모르고 내뱉어 댄다.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기 위한 무슨 편지를 올리니까 특유의 병적 히스테리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대통령이 언론 매체 책임자들과 대화하는 자리를 만들자 조선일보는 기다렸다는 듯 불참을 선언한다. 드디어 대통령 얼굴에 대놓고 한 번 침 뱉은 듯한 느낌일까? 한 마디로 비겁하고 졸렬한 자들이다.

막말로 김정일이나 후세인이 인터뷰 기회를 준다고 해도 기회를 놓칠 수 없는 것이 보도 매체인데, 그들의 본능을 마비시킬 만큼 깊은 그 감정의 골은 어디에 연유하는 것일까? 만일 내가 조선일보라면 머리 싸매고 들어 가 전국에 중계되는 생방송을 이용하여 대통령의 무능과 잘못을 드라마틱하게 홍보하려고 애썼을 것이다.

정파나 언론 매체 등의 상호 견제와 비판은 자유 민주주의의 초석(礎石)과 같다. 그런 견제와 비판이 정파적 이익이나 매체 각각의 편향성 또는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힘든 일이다.

그렇다면 모든 견제와 비판이 냉철한 이성과 공공의 합리성에 기초한 것이며 공공의 가치에 수렴할 것을 기대하는 것을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특히 정치적 비판은 그 사회의 정치 사회적 성숙도(socio-political maturity), 사회의 도덕적 청렴성(moral integrity), 그리고 그 사회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적 특성 등의 함수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공동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다각적이고 깊은 통찰이 결여된 정치적 비판은 좀처럼 사회가 필요로 하는 건강한 소금의 역할을 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된다.

만인이 만인을 향해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자유와 수단이 확보된 좋은 세상이 왔고, 그래서 그들 모두는 무엇인가를 말하고 요구하며 주장한다.

누구는 말해도 되고 누구는 안 되며, 어떤 것은 요구해도 되고 어떤 것은 안 된다는 규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다원화된 사회의 이 모든 목소리들은 어떤 의미에서 모두 이해 관계나 가치관이 충돌하며 파생하는 다양한 주파수들인 것이다.

서로의 목소리가 서로를 괴롭히는 소음으로 작용하고, 공동체 전체를 무차별적으로 난타하기만 하는 사회에선 결코 누구의 목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그런 사회는 사회적 활성을 낭비하여 불필요한 희생을 치르거나 다소의 돌발적 충격에도 스스로 괴멸해 버릴 가능성이 높다. 아름다운 사회도 아니며 성숙한 사회로 이끌어 가는 동력도 될 수 없다.

정치 사회적으로 옳은 비판은 바로 그러한 낭비나 위험성을 알리고 설득하여, 공동체 구성원들이 참된 이성을 되찾고 모두에게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필요한 질서와 가치관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동시 다발적으로 돌출하는 사회적 욕구들을 그 질서와 가치관에 편입시켜, 서로를 인내하고 배려하는 안정성과 도덕성을 회복 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비판의 타당한 존재 가치이며, 또한 언론의 사회적 특권이 규정하는 채무인 것이다.

공동체의 다양한 맛과 구성 성분들을 제대로 아우르고 버무려, 개체적 가치를 발현 시키면서 동시에 서로의 가치를 파괴하지 않도록 이끄는 비판이라야 진정한 소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말처럼 쉬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생각처럼 자유롭고 방종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 많은 말과 생각이 더불어 살아 갈 수 있는 사회의 큰 질서와 가치관에 조화하고 수렴하도록 하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진정으로 남을 나만큼 소중한 인격으로 인정하고, 나를 희생해서라도 공동체의 참된 이상과 가치관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키우겠다는 굳은 의지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이다.

집단 이기주의, 정권욕, 감정적 원한, 권력 지향적 엘리티시즘, 학벌과 지연 등의 사적 가치기준, 그리고 개인 또는 집단의 근본적 무지 등에서 배어 나오는 비판은 비판의 가면을 쓴 위선과 탐욕 그리고 기만과 어리석음의 퍼레이드일 뿐이다.

공동체 가치관의 회복을 위해

우리 나라는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현대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이며 국민이 구가하는 정치적 자유나 분출되는 다양한 사회적 욕구는 어떤 면에서 서구 선진 민주국가들을 추월한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러나 그런 인상은 명백히 우리 민주주의의 형식적 측면일 뿐, 민주주의라는 정치 사회적 조직 이념의 실질적이고 기술적인 요체, 즉 타협과 공동체적 가치의 공유 능력은 아직도 많이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국민의 총체적 능력과 노력의 결실인 경제 역시 세계 11위라는 존경할만한 외형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내용적으론 구조적 빈부 격차가 계속 심화되는 실정이다.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 구조는 성장이냐 배분이냐 문제의 줄다리기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현명하고 재주 있는 엘리트 관료의 정책 아이디어 또는 충격적 사회주의 제도 도입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도덕적 청렴성과 공동체 전체를 관통하는 일반적 가치관의 고양(高揚)에 의해서만 비로소 돌파의 디딤돌이 마련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생각할 때, 경제 정책은 물론 국가 정책 일반의 밑바탕에 앞에서 말한 공동체 공유 가치관에 대한 인식이 동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꿔 말하면, 정책에 대한 비판 역시 우리 사회의 정치 사회적 성숙도, 도덕적 수준, 그리고 공동체 공유 가치관 등과 비춰 보아 타당해야만 이성적이고 정당한 비판이라 할 것이다.

무작정 현재 경제 여건 또는 현상이 나빠 보인다고 몰아가며, 그래서 모든 정책이 글러 먹었고 방향이 틀렸으며 지도자가 무능한 증거라고 비약과 점프를 거듭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논리적이지도 실용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진정으로 나라 걱정하는 선한 의지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비록 그것이 자연적 공생 관계의 조건이긴 하지만, 무릇 인간 사회는 결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냉혹한 먹이 사슬로 구성된 정글 같아서는 안 된다. 근면과 창의성이 높이 평가 받고, 게으름과 무위도식 그리고 탐욕적 이기주의는 스스로 숨을 수밖에 없는 그런 사회적 가치관이 상식으로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어야 하지만, 사회적 약자나 패자가 소외되거나 생존을 위협받아서는 안 된다. 그것이 공동체의 뚜렷한 원칙이 되어야만 한다. 소유가 명예와 존경의 대상이 아니고, 베풀고 나누는 것이 최상의 명예로 인식될 수 있어야만 한다.

(나는 시장주의자들을 믿지 않는다. 강자가 약자를 노예화 하거나 삥 뜯는 깡패조직이 성행하는 자유시장은 결코 스스로 공정해 지거나 정화되지 않는다. 원래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서 정부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는 시장의 질서와 공정성을 확보하여 경쟁의 투명성과 상생적 구조를 담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자본이 정치 권력을 조종하거나 정치권력과 유착하여 전횡하는 것이 오늘 날 시장의 진정한 면모인 것이다. 지금 시장 경제의 가장 큰 암적 요소인 국제 투기 자본은 그 메커니즘의 현대화된 단면일 뿐이다.)

그런 사회는 가능한 것인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만들어 질 수 있는가? 누가 그러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

개인의 창의성과 노력에 합당한 보상이 보장되는 동시에, 경제활동의 성과가 자본가나 기업주의 독점적 전리품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합리적으로 배분될 수 있는 사회는 불가능한 것인가?

기업가나 노동자나 서로의 노력과 기여, 그리고 그 결과 그들에게 돌아 오는 각기 다른 보상에 흔쾌히 동의하고 손잡을 수는 없는 것인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주장하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그 방법을 추구하면 또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가보지 않은 길 – 선도자의 희생

평생 땀 흘리며 길가에서 김밥을 만들어 팔아 모은 전 재산을 아낌없이 사회에 환원하고 이승을 떠난 어떤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할머니가 삼성의 롤-모델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삼성이 그러한 할머니와 크고 작은 기업인의 롤-모델이 되는 사회는 누가 만들 수 있는가? 그런 사회의 골격이 될 공동체의 참된 가치관은 어떻게 확립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런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로 옮겨 가는 발판 같은 도덕적 징검다리와 사회적 성숙이란 사다리를 공동체의 공유 자산으로 확보하는 책무는 누구에게 있는가? 정답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이며 각자일 것이다.

그러나 이 정답이 너무나 이상적이라 관념적 유희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그런 사회 자체가 그림의 떡처럼 느껴지는 절망을 차단해야 한다면, 그 책무를 누군가 솔선해서 떠안는다면, 그 유력한 1순위 후보들은 정치인, 교육자, 언론인, 경제인 등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나머지는 다 손 놓고 구경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입만 열면 국가, 국민 그리고 경제를 뇌까리는 정치인, 언론인, 경제인, 교육하는 자와 교육 받는 자, 그리고 우리 모두는 진실로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직 우리가 가져 보지 못한 사회이며, 그래서 불가능한 유토피아적 꿈이라고 비웃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창의성과 행복을 추구 할 권리가 최대한 보장되면서, 동시에 그들 각자의 가장 고양된 인간성이 발현될 수 있는 최소 단위는 가족이다. 가족이라는 단위에서 성립 가능한 것이 그 집합체인 국가 사회에서 성립되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있으니까 아직 성립되지 못한 것이다. 이유는, 올바른 가치관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탐욕적 소수의 권력 독점과 유착이 국가 사회라는 큰 단위에서 흔쾌히 공유되어야 할 올바른 가치관을 공허한 이상으로 비웃고 무시하며 쓰레기 같은 것들로 대치해 왔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말하는 시대적 가치나 국가 비전 또는 필요한 변화 등, 그 어느 것 하나 귀담아 듣지도 않을뿐더러, 그의 모든 정치적 발언을 습관적으로 매도하고 공격하여 대중의 판단을 오도하는 자들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 가운데 내가 오늘 대통령의 자리에 가면 더 잘 할 것이라 확신하는 자는 손들고 나와 보라.

대통령이 말한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 국토의 균형발전이나 수도권 과밀의 해소이든,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이나 자주국방 역량 강화를 위한 동맹 관계 개선이든, 한반도 평화 확보를 위한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이든 또는 국가 통합을 위한 지역구도 해소나 그를 위한 정파간의 대화와 대승적 협력이든 - 모두 한결같이 부적절하거나 국론 분열을 일으키거나 친북 좌파적이거나 오락가락이거나 그 모두를 합친 것이라고 떠들어 대는 자들만이 뻔뻔하게 손들고 나설 것이다.

이 나라 기득권 세력에 편입되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과거 행적은 공과 과를 구분해 평가해 줄 것을 요구한다. 대개는 민중의 땀과 피로 이루어진 국가 사회의 성장을 빌미로 이룬 작은 공은 스스로 과장하여 키우고, 보다 큰 허물들은 불가피한 시대적 상황 운운하며 덮으려 한다.

그러나 잘하든 못하든 국민이 선택한 현 정권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어떤 평가나 대안도 내어 놓지 않으면서 오로지 크든 작든 허물을 들춰내어 증폭시키는데 급급한 꼴은 참으로 보기 민망할 따름이다.

그들은 스스로 위선적 소인배들이며 결코 우리 사회를 통합하거나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없는 자들임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비판하라. 그러나 최소한의 논리적 일관성, 정직성 그리고 주권자 국민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예의를 배우고 갖춘 다음에 하기 바란다.

가 보지 않은 길을 선도하는 죄로 그토록 욕하고 조롱해서는 안 된다. 그 길이 틀린 길임을 논리적으로 증명하고 바른 길을 제시하라. 아직까지 그대들이 제시한 길은 오직 그대들이 통행세를 받아 먹을 수 있는 길이었을 뿐이다.

추기

이 글은 지난 7월 6일 밤에 썼던 글이다.

그 다음 날 오전 대통령의 기자 간담회를 대충 보았다. 감히 말하고 싶다. 대통령은 솔직하고 겸손하며,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의 신념을 강하게 설득하고 지키고자 하지만, 결코 자신과 다른 생각을 짓밟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믿는 가장 기초적인 원칙의 정치를 구현하고 싶은 욕심으로 대통령까지 되었으나, 바로 그 원칙의 토대라도 만들 수 있다면 지금의 자리도 내놓고 말 사람이다. 부족한 점을 인정할 줄 안다.

그러나 자신이 태어나 자란 나라에 대한 사랑과 그것을 위한 용기에선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염치도 부끄러움도 없이 탐욕과 무지의 올가미에 걸려 독설과 저주를 처방처럼 쏟아 내는 돌팔이들이 넘쳐 나는 세상에 참으로 희한한 사람이 아닌가?

자랑스럽고 희망을 확인한다.
*******************************************************

 **이 글은 데일리서프라이즈에서 퍼온 글입니다. 세상의 변화를 보는 눈을 키우기 위해 이런 글의 진정성을 잘 익혀야 합니다. 변화를 추구하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생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외면하는 일은 생명을 허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Total 70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정치지도자와 정당 - 노무현 (1) 이윤화 05-02 4857
공지 역사는 우리의 죽음이후까지를..... (4) 이윤화 03-24 7163
70 타락한 자의 자아비판(펌글) 운영자 12-01 2536
69 우리에겐 미래가 없는 것일까요? 운영자 10-21 3245
68 평생 경계해야 할 세 가지 이윤화 02-14 2556
67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의 차이 이윤화 02-08 2890
66 4대강사업 유공자 명단을 기다립니다. 이윤화 08-31 3019
65 알량한 학문 - 횡통(橫通) 이윤화 08-15 2633
64 분노와 체념을 넘어서 이윤화 07-18 2550
63 4대강 사업과 홍수(이상돈 교수) 이윤화 07-17 2794
62 안동사는 사람의 분노와 두려움 이윤화 07-13 2851
61 그대 간은 녹아봤자... 이윤화 07-04 2554
60 한국수자원학회, 이제야 걱정되십니까? 이윤화 06-27 2751
59 도덕의 중요함 (2) 이윤화 06-27 2630
58 황하의 치수 원칙 이윤화 02-20 3099
57 4대강사업 저지 국민소송단을 눈물 짓게 한 최종변론서 이윤화 11-15 3250
56 혁명과 학문, 섹스의 공통점 (펌글) (1) 이윤화 08-13 4758
 1  2  3  4  5  
이윤화 교수 l E-mail : yhlee@andong.ac.kr
Copyright ⓒ chinahistorio.com. All rights reserved. Since September 1,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