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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06-17 05:38
[일반] '유비쪼다론'에 대한 재평가의 필요성
 글쓴이 : 마승희
조회 : 3,084  
최근 인물의 재평가라고 하여, 여러 인물들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범위는 아주 광범위해서 역사부터 우리가 읽고 자랐던 동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예로, '흥부전'에 나오는 놀부를 단순히 악인으로 말하던 기존의 평가를 뒤집어 경제관념이 투철하고, 생활력없는 동생을 독립시키려는 형으로 나옵니다. 그런 세태에 힘입어, 한 ․ 중 ․ 일을 통틀어 불후의 고전(古典)이랄 수 있는 '삼국지(三國志)'역시 재평가의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여러 인물들이 도마 위에 올랐지만,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지는 인물이 유비 현덕과 조조 맹덕입니다.

기존의 평가는 짧게 말하자면 '유비는 착한 사람이고, 조조는 나쁜 놈이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재평가를 거친 것은 거의 극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상반된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유비는 옛 이데올로기를 붙잡으려고 아등바등 한 것이고, 조조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실천한 것이다.' 라던가, '유비는 정에 휩쓸리고, 후계자를 바로 정하지 못하는 등 여러 실책으로 나라를 위태하게 만들어 경영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반면, 조조는 뛰어난 경영철학을 가진 창업주이자 CEO'로 급부상했습니다. 성인군자의 모델이나 다름없었던 유비가 무능한 위선자로 곤두박질치고, 잔꾀와 간교의 화신이나 다름없었던 조조가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현재에는 오히려 조조가 높게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처세학이나 경영학 등의 실용서 역시 이런 평가에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지가 뒤집어 진 것 만큼이나 상반된 평가는, 아무리 재평가를 거친 결과라고 해도 석연치 않습니다. 똑같이 무능력하다는 평가를 받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간성 만큼은 좋은 평가를 받는 흥부에 비해, 유비는 인간성마저 '음흉한 위선자'라는 평가가 내려졌고, 심지어 고우영 화백이 그린 삼국지에서는 '쪼다'로 그려졌고, 최명 교수의 『삼국지 속의 삼국지』에는 유비 쪼다론마저 존재합니다. 물론 여태껏 성인군자라는 추앙을 받았던 사람들이 다 옳은 것만은 아닙니다. 공자는 자신이 존경하는 주공(周公) 단(旦)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강태공(姜太公)을 폄하하였고, 조선의 성군이라고 칭송받는 세종(世宗) 역시 후계구도를 제대로 잡아두지 않고 죽었기에 훗날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는 빌미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을 심하게 폄하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훌륭했기에 그 허물을 덮어두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삼국지의 인물 중에서 유독 유비만이 '쪼다'라는 소리까지 듣는 것일까요?

어째서 이런 상황이 되었냐는 것을 보기 이전에, 기존의 평가는 어디에서 왔고 지금의 평가는 어디에서 근거하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기존의 평가는 촉한정통론에서 옵니다. 즉, 유비가 세운 촉한이 정통이라는 이론이지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 유래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평가는 북위정통론에서 기인합니다. 조조의 위나라가 정통이라는 이론이지요. 이는 『삼국지연의』의 근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진수(陳壽·AD 233~297년)의 『삼국지』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정통론이란 어느 왕조가 창건될 때마다 논란이 되어 왔고, 국가의 존속과정 속에서도 크고 작은 정통론이 존재해왔습니다. 동양에서 특히 논란이 된 이유는, 그 국가의 정통성과 관련이 깊은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정통성이 흔들리거나 부정당하면, 그 국가의 존속마저 흔들렸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각각의 정통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상을 이해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나관중이 살던 시기는 원말명초였습니다. 바야흐로 소위 '오랑캐'의 시대가 가고 한족의 시대가 도래하던 때였지요. 그 당시 민중들에겐 이미 촉한정통론이 널리 퍼져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개인의 가치관이 가장 많이 반영되기는 하지만, 글에 시대의 가치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왜 촉한정통론이 널리 퍼져있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명나라가 한족이 세운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명나라는 원의 치하 아래 무너졌던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 한족 고유의 문화를 되살려 냈습니다. 그 결과 과거제가 부활했고, 관제를 포함한 국가의 체제가 완전히 바뀝니다. 그러한 명의 국가 체제가 지향했던 방향이 한(漢)입니다. 그리고 삼국지에서 그 한을 일으킨다는 명분 아래 일어섰던 자가 유비입니다. 게다가 이는 유교적 이념과 맞아떨어져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반면 진수는 사마염이 일으킨 진(晋)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래 촉나라 사람으로, 촉에서 벼슬을 한 적도 있는 사람입니다. 이 정도만 봐서는 진수가 마땅히 촉한정통론에 입각하여 정사(正史)삼국지를 썼을 것이라고 짐작할 지도 모릅니다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진수는 진대의 사람이었습니다. 진은 전대의 위(魏)왕조를 찬탈하여 만든 것이기 때문에, 정통이 위에 있다면, 위의 정통을 이어받았다는 사실이 명백해집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진의 정통성이 확보되므로 위에 정통성을 부여할 수 에 없었습니다. 시대적으로 그런 상황에 처해있었기 때문에, 정사(正史)를 쓰는 진수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위(魏)는 후한의 뒤를 이어 중국문화의 발흥지인 황하유역에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사적이 비교적 많았으므로, 위의 연호를 따르는 것이 비교적 편리하다는 이유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촉한정통론과 북위정통론은 위와 같은 배경 속에서 만들어 졌습니다. 그러나 지금껏 사람들의 의식을 차지하고 있던 것은 촉한정통론이었습니다. 이는 대부분의 번역서들이 진수의 '삼국지'보다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치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에게 촉한정통론이 익숙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북위정통론을 근본으로 삼은 이문열의 삼국지나, 고우영 화백의 만화삼국지를 통해 속칭 '유비쪼다론'이 대두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급속도로 대중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신선하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저는 그에 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본주의가 우선되는 현대 사회에서 유교는 고리타분한 사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유학이라고 하면 남녀차별이나 신분차별 등과 연결시켜 고리타분한 사상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서 더 이상 유교의 성인군자와 같은 인물상으로 인식되는 유비의 인기가 지속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더 나아가 그저 속아 넘어가기 쉬운 어수룩한 사람이나, 형세가 위험하면 이리저리 박쥐처럼 붙어다니거나 도망다니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비춰질 뿐입니다. 그에 비해 조조는 유교 사상에 얽매인 인물도 아니며, 비정하지만 능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비춰집니다. 실제로 그는 뛰어난 문장가이기도 했습니다. 자연스레 유비보다 조조가 뛰어난 인물로 비춰지는 시대가 온 것이지요. 이런 분위기는 1990년대부터 형성되어 IMF 사태를 거치면서 조조를 뛰어난 경영철학을 지닌 창업주이자 CEO에 비유하는 단계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때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어째서 IMF 사태에 조조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유비는 쪼다로 전락했는가? 이것은 조조를 더욱 뛰어나게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있으나, 다른 의도가 숨어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비는 그저 쪼다로 평가될 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 역시 나라를 세울 역량이 되었으니 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조조가 그 자신이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유비는 뛰어난 인물을 끌어들이는 능력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조조가 가진 '리더십'이 각광받았지만, 지금은 리더 한 명만의 카리스마로 집단이 움직이기 보단, 팀원들과의 인간적․지적 교류를 기반으로 하는 '파트너십'이 각광받는 시기입니다. 이 '파트너십'이란 유비의 '인품'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이루기 힘든 것입니다. 유비의 인품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뿐만 아니라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도 엄연히 기록되어 있는 사실입니다. 이런 검정된 '파트너십'을 가진 유비가 근래에는 너무 평가절하된 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비에 대한 평가도 다시 재평가 되어야 합니다.

참고

진순신 ․ 오자키 호츠키 / 삼국지의 영웅 / 솔 / 2002
김학준 기자 / 인하대 삼국지 연구소 본격 해부 / 서울신문 / &nbsp;2006-04-07

남효림 08-06-18 11:32
 
역사의 재해석이란 시대나 역사를 재해석 하는 사람들 마다 각기 다 다른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리더십에서 이제는 파트너십이 각광받는 시대라는 부분에서 유비를 새롭게 재해석하려는 부분이어서 그런지 흥미로웠습니다. 각기 다 다른 환경과, 시대와,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인간으로써 역사를 재해석 한다는 것은 어떻게 쓰여질지 모르기 때문에 더 의미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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