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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05-04 14:35
[일반] 우리가 봐야 할 역사관
 글쓴이 : 손현섭
조회 : 3,575  
우리는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으며, 또한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일까? 안동대학의 국학역사계열 사학분반으로 공부한지 벌써 3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다. 그 중에서 교수님의 말씀은 나의 역사관을 돌이켜 보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지금이 되어 나만의 역사관을 기록하게 되었다.

첫 번째로 소개할 이야기는 삼국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삼국지에 대해 나 스스로는 많은 종류가 읽었기에 자신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대학교에 와서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난 뒤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중 하나가 유비와 조조에 대한 평이라고 할 수 있다.

유비에 대한 사전적인 의미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자 현덕(玄德). 묘호 소열제(昭烈帝). 전한(前漢) 경제의 황자(皇子) 중산정왕(中山靖王)의 후손.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신발·돗자리를 팔아 생계를 잇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15세 때 노식(盧植)에게 사사하여, 동문 공손찬(公孫瓚)과 교의를 맺었다. 그러나 학문을 즐겨 하지 않고 호협(豪俠)들과 교유했으며, 휘하에 관우(關羽)와 장비(張飛)를 두고 있었다.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무리를 모아 토벌에 참가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그 뒤 공손찬에게 의탁하여 원소(袁紹)와의 대전에서 공을 세웠다. 조조(曹操)와 서주목(徐州牧) 도겸(陶謙)과의 대전에서 도겸을 도왔으므로, 도겸이 죽자 서주목이 되었다.
196년 원술(袁術)로부터 공격을 받자 조조의 구원으로 원술을 물리치고, 진동장군의성정후(鎭東將軍宜城亭侯)에 임명되어 조조에게 의탁하였다. 그러나 조조 모살계획에 참가하였다가, 이 계획이 사전에 누설되자 하비로 탈주하였다. 원소·조조의 관도대전(官渡對戰)에서 원소와 동맹하고, 이에 패하자 형주목(荊州牧) 유표(劉表)에게로 가서 객장(客將)이 되었다. 이 무렵 삼고지례로 제갈량(諸葛亮)을 맞아들여 그의 계략으로 형주에서 기반을 구축하던 중, 유표가 죽고 그의 아들 유종(劉琮)이 조조에게 항복하자 조조가 대군을 거느리고 형주를 공격해왔다.
손권(孫權)과 동맹하여 적벽 전투에서 조조를 대파, 형주를 확보하였다. 조조가 한중(漢中) 침입을 기도하자, 익주목(益州牧) 유장(劉璋)의 요청에 따라 명장 관우를 형주에 잔류시키고, 촉(蜀)에 들어가 유장을 항복시키고 촉을 수중에 넣었다. 그러나 형주의 영유문제를 놓고 손권과 대립하여, 명장 관우가 패사하고 형주는 손권이 영유하게 되었다.
이때 유비는 한중을 공격하여 한중왕이 되었으며, 220년 조비(曹丕)가 한나라 헌제의 양위(讓位)를 받아 위(魏)의 황제가 되자, 221년 그도 제위에 올라 한의 정통을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국호를 한(漢:蜀漢)이라 하였다. 다음해 형주의 탈환과 관우의 복수를 위해 오나라를 공격하였으나, 이릉(夷陵)의 싸움에서 대패하여 백제성(白帝城)에서 후사를 제갈량에게 위탁하고 병사하였다.

다음으로 조조에 대한 알아보자.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자 맹덕(孟德). 묘호(廟號) 태조(太祖). 시호는 무황제(武皇帝)라 추존되었다. 패국(沛國)의 초(譙:安徽省 毫縣) 출생. 환관의 양자인데, 황건란(黃巾亂) 평정에 공을 세우고, 두각을 나타내어 마침내 헌제(獻帝)를 옹립하고 종횡으로 무략(武略)을 휘두르게 되었다. 화북(華北)을 거의 평정하고 나서 남하를 꾀했는데, 208년 손권(孫權)·유비(劉備)의 연합군과 적벽(赤壁)에서 싸워 대패, 이후도 그 세력이 강남(江南)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같은 해 승상(丞相), 213년 위공(魏公), 216년 위왕(魏王)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정치상의 실권은 잡았으나 스스로는 제위에 오르지 않았고, 220년 정월 뤄양[洛陽]에서 죽었다. 문학을 사랑하여 많은 문인들을 불러들였으며, 자신도 두 아들 조비(曹丕)·조식(曹植)과 함께 시부(詩賦)의 재능이 뛰어나, 이른바 건안문학(建安文學)의 흥륭(興隆)을 가져오게 하였다. 후세에 간신(奸臣)의 전형처럼 여겨져 왔는데, 근년에 이르러 중국 사학계에서는 그를 재평가하는 논쟁이 일기도 하였다.

두 사전적 의미에서 보면 분명 유비는 훌륭하고, 인자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조조는 너무 간교하며 간옹적인 인물로 기록되었다. 그래서 위의 내용처럼 최근에는 중국에서 조조와 유비의 평가가 새로 되고 있다.
또한 나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윤화 교수님도 말씀하셨듯이 유비는 거의 보수적인 인물이었고, 조조는 개혁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 이러한 점은 당시 삼국지연의가 쓰여 질 배경 때문인 것 같다. 당시 나관중이 살던 시기는 원나라 말기였다. 그래서 모든 인식이 몽고식으로 바뀌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영웅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관중은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유비를 훌륭한 인물로 평가한 것 같다.

두 번째 이야기는 당시 집권자와 시대 배경으로 역사가 쓰일 수 있는 것 같다.
그 중에서 백제의 마지막인 의자왕이 그 피해자였다고 생각한다. 의자왕은 초기에 정치를 잘하고 해동증자라 불릴 정도로 훌륭한 왕이었다. 그러나 점점 말기로 접어들면서 향락과 사치를 일삼는 왕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백제는 의자왕 때에 망하게 되었고, 의자왕은 당나라에 끌려가 그 곳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또한 광해군의 중립외교도 당시의 명에 대한 사대적인 배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광해군은 서인세력의 인조반정으로 인해 왕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불행한 왕이 되었다. 또한 왕의 칭호도 받지 못하고, 세자 시절의 칭호로 남게 되었다.
아마 광해군의 집권 당시에 명에 대한 사대정신 없었다면 그는 훌륭한 임금으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역사의 발전이 좀 더 달라졌을 것이다.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면 우리의 알고 있는 역사관은 언제나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과거의 역사가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고, 미지의 세계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라는 학문은 시대에 맞게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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