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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04-21 01:20
[일반] 오늘 대왕 세종을 감동을 받아서 올립니다...
 글쓴이 : 김지영
조회 : 2,552  
오늘 대왕세종을 보면서 줄거리와 느낀점을 종이에 그냥 쓰다가 친구들과 토론거리가 되면 어떻까 싶어서 올립니다. 별로 인것 같으면 나중에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보는 도중에 쓴 것이라 처음부터는 아닙니다. 제가 적기 시작한 부분이 양녕이 가신들과 토지에 관하여 회의를 하고 있는 부분이였습니다. 양녕이 자신의 의견에 대해서 반대하는 신하를 파직시킨 후 가신의 종류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 나의 결정에 찬성하는 가신은 충신이며, 불복하는 가신은 간신이다. 간신은 파직시키고 지방에서 세력을 키워 덤빈다면 죽이겠다."라고 했습니다. 회의를 그렇게 끝낸 후 가는 길에 김종서와 다른 신하들을 만난게 됩니다. 김종서가 "진정 폭군이 되고자 하십니까?" 라고 하자 양녕은 &nbsp;" 폭군? 한번 폭군이 되어볼까?"라고 하면서 김종서를 파직시킵니다. 이에 황희가 파직에 대해서 번복할 것을 요구하자 양녕은 "대감 마저 반대합시니까?라고 하면서 약간 울먹거리는거 같았습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양녕이 외로워 하는것 같았습니다. 주위에서는 항상 안된다라고만 하면서 자기편은 들어주지 않아 서운함을 느낀 것 일까요? )

양녕이 경성으로 보낸 내금위장의 밀서가 도착하지 않아 화를 내고 있는데 신하가 옆에서 밀서를 전하면서 이미 와있었으나 여러 일이 있어 전하의 안위를 걱정하여 이제야 드립니다 라고 하니 양녕은 화를 내며 "판단과 결정은 내가 한다, 넌 그냥 시키는 대로 실행만 하면 된다."라고 하면서 밀서의 내용을 읽은 후 경성사절사를 파직 시킵니다. 또 다른 대감에게는 나에게는 대감 하나 쯤은 지옥으로 보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겉으로는 폭군의 기질이 보이는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양녕도 하나의 피해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에서도 얘기했다시피 주위에는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신하들이 별로 없고 반대하는 신하들만 있으니 스트레스와 서운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고 그것을 밖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경성절제사인 최윤덕은 야인들에게 물품을 주며, 함께 격구를 하면서 지냅니다. 이를 본 내금위장이 분개하자 옆의 군감이 "적과 친해져서 정보를 얻을려고 하는거 아니겠습니까?"라고 합니다. 그의 말에 내금위장은 "적과 친해지면 전투때 심리적으로 흔들리게 된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저는 적과 친해진 다음에도 꼭 싸워야 하는쪽으로 생각해야 하는것일까 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같은 나라사람도 아니고 국경을 맞대고 있으니 싸울수도 있겠지요, 그렇다고 전쟁때 불리해 진다고 하여 무조건 싸우며 지내야 하는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윤덕이 야인(여진)들에게 물품을 주는것은 마을 사람들에게 빼앗은 것이는 하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물품을 주면서 전쟁을 지연시키고 그것이 마을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니 얼마나 좋은 행동이겠습니까? &nbsp;이 부분을 보면서 최윤덕이 한 행동은 후에 광해군이 펼친 중립외교정책과 똑같지 않을까 합니다. 윤덕은 마을사람들을 위해 한 것이고, 광해군은 나라를 위해서 한것이지만 윤덕의 행동은 넓게 보면 나라를 위한 행동으로 볼수 있지않겠습니까?

내금위장이 화포를 설치해서 야인들과 전투를 한 후 최윤덕은 파직을 당했습니다. 전쟁 후 최윤덕은 관복을 입은채 손수 부상자를 치료합니다. 내금위장이 다가와 군복을 반납하라고 하자 윤덕은 "야인놈들 도끼하나 못 피하는 멍청이들 혼 좀 내주고 나서 벗겠수다, 입고 버티지는 않을테니 걱정마슈."라고 합니다. 파직당해 떠나는 그 날 밤 장영실에게 윤덕은 뒤에서 돕는것 보다 앞에서 화살을 조금이라고 더 맞는 것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된다 라고 합니다. 이에 장영실이 "전쟁을 싫어하시는 것이 아니였습니까?"라고 하자 "우리같은 무관들에게는 전투하는 곳은 자기 집이나 다름 없다고 하면서 마을를 떠납니다.

다음날 장영실은 충녕에게 찾아가서 윤덕에게 군복을 다시 입힐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합니다. 충녕이 "윤덕은 이미 떠났지 아니한가?" 라고 하자 영실은 충녕을 어느 곳으로 데려다 줍니다.
그것에는 윤덕이 징을 치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놀고 있었습니다. 윤덕이 징을 치자 마을사람들은 땅에 숨겨져 있는 곳으로 들어가서 숨습니다. 그곳은 바로 전쟁시에 몸을 피할 수 있는 대피소 였습니다. 윤덕은 남자에게 다가가 전쟁이 생기면 여자와 아이들을 이곳으로 바로 피하게 하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충고합니다. 파직 당한 후에도 마을 사람들을 챙기는 그에게 충녕은 "당신은 배알도 없습니까? 자신을 파직시켰는데도 억울하지 않습니까?" 하며 소리치자 윤덕이 충녕에게 주먹을 날리면서 "됐냐? 앙?"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끝이 납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저는 정말 감동했습니다. 말은 약간 심하지만 부하들을 걱정하고 파직 당한 후에도 마을 사람들을 걱정하여 대피훈련을 시키는 윤덕.....
만약에 경성이라는 마을를 하나의 나라로 본다면 윤덕은 정말 훌륭한 왕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종이에 쓴다고 귀를만 들어서 말이 약간씩 맞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올릴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나 오늘의 부분이 너무 기억에 강력하게 남아서 친구들과 얘기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김지영 08-05-01 20:38
 
저도 그말에는 공감합니다. 이 때 황희가 양녕의 정책에 반대를 한 것도 다 양녕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반대하는거 보다는 어느 정도의 충고을 제시하여 줬더라면 어떻게 됬을까요? 말에 비유한다면 당근과 채찍을 같이 알맞게 쓰듯이...
박한상 08-04-24 20:11
 
사서에서 보면 황희는 유일하게 양녕의 폐세자를 반대했다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마지막까지 아군이었던 신하지요. 문제는 지금 양녕 대군이 민무휼 형제들의 감언에 넘어간 상태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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